한국 도검의 역사 Report ZZ
- dpablan4077
- 2020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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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검의 역사 Report
한국 도검의 역사
한국 도검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한국도검의역사
한국사람들이 칼을 사용하였던 시기는 아주 오래 전 부터이다.
석기시대에는 돌로써 칼을 만들었으며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으로 칼을 제작하였다. 이후 기원전 7~8세기를 전후해서 철이 생산되었으며 기원전 2~3세기에 유물에 의해 확인되었다. 한반도에 철의 출현은 금속기술의 빠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여러 종류의 광범위한 금속 칼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칼의 무기로써의 전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치는 무기로서 주로 몽둥이의 구실을 해왔으나 석기시대, 간 돌칼 즉 마제석검이 나타나면서 부터 주로 찌르는 무기가 되어 이 기능은 청동기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러다가 철기시대가 열리면서 주로 찌르는 기능의 무기였던 검이 도로 변하면서 베고 자르는 몫까지 다하게 된 것이다.
BC 400년경. 이 땅에 철제 칼이 만들어지고 BC 200년을 전후하여 우리 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환두대도가 만들어진다. 환두대도란 손잡이 끝부분에 등근고리가 있는 큰 칼이라는 뜻으로 후일 흔히 환도라고 부르는 칼에는 고리가 없어지나 칼자루 끝부분에 작은 구멍을 내어 그 흔적이 남아 있게 된다. BC 100년경, 환두대도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에서 보다 독자적으로 개발되어 다양해지고 날도 특별히 담금질한 극강의 도로 변하며 이런 무기와 기능이 무력집단에 의해 일본까지 건너가게 된다. 특히 백제에서는 “도부”라는 별도의 부서를 둘 정도로 그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의 도.검은 이전의 철기문화가 계속 이어져 현대의 도.검 문화로까지 이어진다. 삼국시대의 철기문화가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화려한 장식을 위주로 발달하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장식검으로는 황금장단검이 있다. 황금장단검은 황금을 사용하여 장식하였다. 이후 고려의 도.검은 통일신라의 화려한 장식을 지양하고 질박한 장식을 위주로 하였다.
고려의 도.검은 이전의 시대보다 실용적 이며, 힘찬 고려 무인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려 무인의 정신은 생활의 검소함과 국가를 위한 헌신적 충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무인 정신은 고려 중기의 삼별초 항전에서도 보여진다.
조선시대는 문신(文臣)위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는 무인들 개개인의 단병기술이나 군사적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 덕목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무인들의 예전의 무인정신이나 기백을 계승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조의 무인은 유교적인 무인정신이 강조되는 새로운 차원의 무인으로 변해갔다. 곧 조선시대의 유교적 무인들이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있어서는 이러한 유교적 무인들도 천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조선시대의 양반 계급사회)에서 도.검의 장인들 또한 고유의 장인정신이 없었고, 기능적인 무기 생산에 그쳐 전대의 뛰어난 세공기술을 전승받지 못하였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2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한국 도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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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한국,도검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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